찬란함의 무덤

나에게 딱 두명의 영화감독을 뽑으라면 한명은 브레송이고 다른 한명을 아핏차퐁위라세타쿤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찬란함의 무덤은 근 10년간 본 영화중 최고였던것 같다. 그는 대상의 영혼을 찍는 법을 알고 있는것 같다. 그 대상이 생명체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심지어는 빈 공간을 찍어도 거기에 무엇인가 존재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유물론자일지도 모르는 나의 이성조차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세계가 있다. 그는 몸을 통해 다른 세계를 불러오고 거기서 만들어내는 치유와 각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현실이라는 지각은 증발하고 꿈은 우리를 진실로 인도한다. 특히 라스트 씬의 저 장면은 아마 두고두고 감독 자신에게도 그것을 본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될 것이다.

아핏차퐁은 영화의 대부분을 카메라를 고정시켜서 찍는다. 그런데 군부독재로 태국에서는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기로 선언한 감독이 단체로 운동하는 씬을 보여줄때 갑자기 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우리는 그 장소를 떠나며 자신과 안녕을 고하는 감독의 슬픔을 발견한다. 그 장소는 감독의 실제로 고향이고 그때 나오는 노래는 무려 love is a song 이며 거기에 갑자기 감독의 젊은시절(지금보다)인 듯한 남자가 들어온다.

감독은 독재의 검열로 고향을 떠나지만  영화속 마지막 홀로 앉은 ‘젠’은 현실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 뜬다. 남겨진 ‘젠’이 현실의 이데올로기라는 상상의 세계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눈을 부릅뜨는 것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처연하고 슬픈 라스트 씬의 파헤쳐진 땅이 한국의 현실로 환원되어 성큼 다가오는 것 또한 나는 어쩔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