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

홍상수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마치 모든비평을 피해가는 영화같으며 동시에 모든비평이 수용되는 영화같기도 하다.  그의 영화를 하도 보다보니 영화에서 계속되는 반복의 상황들과 영화속의 대화들은 이제는 다른 뜻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예를 들면 생활의 발견에서 예지원이 처음만난 김상중에게 성관계중에 ‘사랑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던 그 상황이 이 영화속에서도 비슷하게 술자리에서 연출된다. 춘수는 술을 마시다 처음 만난 희정에게 느닷없이 사랑한다고 말한다.그렇지만 의미없는 말들의 조롱으로 등장했던 그 사랑이라는 단어가 반복될때 나는 혹시 이영화가 정말 사랑에 관한 영화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랑해요, 결혼해요, 지금속초가요. 기다려요, 기다릴께요. 술을 먹었을때만 할수 있는 말들은 모두 실현되지 않는다. 그것이 술자리에서는 수용되었는데 현실속에서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 술김에 하는 말이 현실을 통해 버림받듯이 두개로 나뉜 이 영화에서 첫번째는 남자의 사랑이 여자에게, 두번째는 여자의 사랑이 남자에게 버림받는다. 그러나 실은 그 사랑들도 그들의 술취한 말처럼  현실에게 버림받는것이다. 그 다음 그들은 모두 현실에게 돌아간다. 영화속 의미없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반복을 통해 의미를 드러내고 오히려 그 진심을 방해하는 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두번 반복되며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차이를 통해 같은것을 발견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홍상수 영화의 즐거움은 무엇보다도 객관화되는 내 말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어떤 말이든 객관화 되는 순간 조롱당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영화에 찬사를 보내면 그 찬사를, 의미를 부여하면 그 의미를 객관화시켜 소멸시켜버린다. 그러면 무엇이 남는 것일까. 화면가득 덮이는 겨울의 눈발속에서 등을 돌리는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영화는 봄이 올꺼라고 노래한다. 그 음악만이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 노래엔 불가능한것을 바라는 어떤 소망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농담처럼 친구와 이야기했지만 영화제목처럼 ‘지금은맞고그때는들리다’에서 우리의 지금은 항상 그때가 된다. 우리의 지금은 말하는 순간 항상  과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제목대로라면 우리는 반드시 틀리고야 마는데 지금과 그때를 나누고 틀리게 하는것은 시간때문이다. 시간은 우리가 손에 쥘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에 존재하고 시간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덮쳐온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늘 틀릴것이다. 되돌아볼때, 객관화 될때 거기엔 우리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날수 없다. 그래서 영화는 어차피 틀릴 현실을 냉소적으로 바라볼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