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팟캐스트를 그만두었다. 이야기는 표피이고 카메라와 쇼트, 그 이야기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의미를 바라보는 습관에 익숙해져서인지 문학에서 이야기란 고백하자면 늘 고역이었다. 그 구구절절한 묘사가 싫었다. 그러나 신형철의 문학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문학이 더 위대하다고 말할순 없었지만 문학이 더 세심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의 말투가 세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에게 지금 필요한것은 저 위대한 거대담론이 아니라 세심한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방송을 열심히 들었다.

덕분에 그 영향으로 짬짬이 소설을 읽게되었다. 고전인 괴테로 부터 시작해서 버지니아 울프, 샐린저, 그리고 가장 최근에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까지 시대에 방점을 찍어가며 읽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가까스로 끝까지 읽어내려가야 했다. 나는 여전히 홍상수의 자유의 언덕이 보여주는 마술이 훨씬 좋고 행복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가가 팟캐스트 문학이야기를 그만두었다. 그가 글을 쓰기 위해서 방송을 그만둔다고 한 날 그의 새 책이 나왔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좋아하는 정성일 평론가의 책은 다 사지 않았는데 신형철 평론가의 책은 다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후 진중권의 문화다방에 정성일 선생님이 나와서 ‘신형철’이란 이름을 언급했다. 삶이 교차하는 순간이 만들어낸 우연들의 반짝거림을 보는 것은 기쁜일이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장승리 시인의 말에 나오는 한 귀절. 언젠가 문학이야기에서 신형철이 이 문장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한다. 어쩌면 내가 그것을 모르던 처음부터 물끄러미 나를 마주하고 있었던것 같은 그 문장. 그 문장을 그의 신작 제목에서 다시 마주했다. 이 책은 그가 사랑하는 대상 – 비평에 관한 책이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학비평이 아니라 영화비평서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신형철이 좋아하는 영화는 나에겐 다 별로였다. 찾아서 다시금 확인해 보았는데 역시 별로였다. 문학의 세심한 감수성이 활동이미지인 영화로 오는 순간 이상하게 소녀적 감수성이 되는것을 본다. 그렇지만 그 세심함이 주는 위로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책을 산다. 거기엔 마음을 함부로 취급하지 않는 그런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