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이 열린 결말이라는 착각

인셉션의 라스트씬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선 마지막 집으로 돌아온 코브의 장면이 현실일까 꿈일까 많은 논란과 화제를 낳는 중이다. 그러나 사실 관객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코브가 눈을 뜨면서 부터다. 코브가 갑자기 눈을 뜨면 클로즈업으로 그의 눈이 보인다. 다음 컷에서 이 상황을 어리둥절해 하는 그의 얼굴이 보인다. 이건 마치 ‘자 이 영화의 꿈의 주제는 바로 너였어’라고 말하는것 같다. 문제는 그 다음 컷에서 코브의 상반신이 보이면서 카메라가 서서히 피셔에게 향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이번엔 피셔를 클로즈업을 한다. 코브에게 집중되었던 감정이 갑자기 피셔에게로 옮겨진다. 이건 말하자면 피셔가 아버지의 재산을 공중분해 하기로 마음먹는다는 뜻이고 이게 현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피셔에게 아버지의 재산을 분해하도록 인셉션한 사이토와 코브는 어리둥절하다. 영화는 마지막에 일부러 꿈꾸는것 같은 코브과 현실인것 같은 피셔를 모두 클로즈업 함으로 양쪽 모두에게 갑정이입을 시키도록 만들어놨다. 의도적으로 이미 관객에게 꿈과 현실이 헷갈리도록 영화를 설계한것이다. 그 다음 공항에서 코브은 아버지를 만나는데 그 때 배경은 약간 아웃포커싱을 해서 꿈처럼 처리했고 아버지를 만나서 화면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바로 집의 거실이 나온다. 중요한건 집의 현관을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건 말하자면 연극의 무대같은 거다. 갑자기 서 있는 장소 혹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게다가 공항에서 집의 거실까지 거리가 먼 장소를 점프컷 했는데 음악은 비행기 안에서부터 끊기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흐른다. 이것이 무의식중에 관객에게 혼란을 준다. 영화속 음악이 관객의 현실의 시간이라면 계속 점프컷을 하는 씬들은 영화속의 시간. 결국 이 둘의 다른 시공간의 배치는 관객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흔들리듯 도는 토템이 혼란을 증폭시킨다. 우리가 이것을 보고 열린결말이라고 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열린결말은 그 결말은 응시함으로써 어떤 다른 주제를 환기시키거나 각성시킬때 쓰는말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의 퍼즐이 헷갈리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해놓고 영화 내용보다는 이 인셉션이라는 영화를 관객의 림보에 인셉션 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의 이유는 관객이 영원히 이 영화에서 깨지 않기를 바라는거다. 그래서 엔드크레딧에 꿈을 깨우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흐르지만 중간에 음악을 뭉개버림으로  당신들의 꿈은 계속될거라는 암시를 준다. 그러므로 감독의 입장에서 완벽하게 닫한결말인것이다. 이렇게 감독이 관객에게 의도적인 장치를 심어놓고 그것이 이슈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과연 좋은 영화일까? 여기서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진심은 영화 어디쯤 위치한 것일까?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트윗에 올렸던 나의 140자 감상. ‘인셉션을 막 보고 나왔다. 상업영화란 언제나 대중의 상상력에 기대고 있다. 대중이 상상했으나 미처 깨닫지 못한것을 보여줄때 멋진 영화가 된다. 반대로 예술영화는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고 있다. 그 작가의 상상력에 우리가 마음을 열어 다가가 그의 진심을 발견할때 그와 친구가 된다. 다시말해 인셉션은 멋진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