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상상

오랜만에 아트하우스모모에 다녀왔다. 여기 후문 주차장을 들어가는법을 알려준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만나지 않는다. 들어가면서 생각이 났다. 우연과 상상은 너무 감동적이라 울뻔했다. 아니 근데 드라이브 마이 카는 왜 그 모양인지 이해가 안된다. 하마구치 류스케야 워낙 텍스트를 대화로 낭독해서 소설적 상상력을 스크린에 치환하는것으로 유명하니까 그 부분에 관한 내용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 나는 하마구치의 이런 방식을 영화에 대한 말의 침공이라고 같이 보러간 양파맨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집에 도착해서 인상적이 장면 복기해본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내 생각에 주제는 자리다. 하마구치의 해피아워에서도 계속 반복되지만 인물들이 말을 하다가 듣고 있던 다른 인물을 남겨놓고 나가버린다. 그러면 그 자리는 비어버린다. 혼자남는 세계. 택시에서 메이코와 츠구미가 대화를 한다. 그 둘은 절친이고 대화는 츠구미의 새로운 남자친구이야기를 소재로 화기애애하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츠구미가 먼저 내린다. 그러면 츠구미의 자리가 비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다음 쇼트에서 메이코가 그 자리에 앉아있다. 츠구미는 지금 메이코의 예전 애인과 카즈아키와 사랑에 빠져있다. 메이코는 그걸 알고있고 츠구미는 모르고 있다. 메이코는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하는듯이 츠구미의 자리에 앉아있다. 그 다음 자신의 애인이었으나 츠구미와 사귀고 있는 카즈아키를 만나러 그의 사무실로 간다. 여기서도 자리의 변주는 일어난다. 메이코가 카즈아키에게 빈정대며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다 메이코가 사무실의 어느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한다. 그렇게 대화가 계속되다가 메이코가 앉았던 의자에 카즈아키가 앉는다. 그러자 대화가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흐르더니 이둘은 느닷없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 직원이 들아와서 긴장감은 깨진다. 메이코는 뛰쳐나가고 카즈아키의 자신의 원래자리인 대표자리에 앉는다. 자리에 대한 감정의 전이. 에피소드의 끝에 다다르면 카페에 츠구미와 메이코가 마주 앉아있다. 우연히 카페 유리 밖으로 지나가던 카즈아키를 마주한다. 카즈아키는 들어와서 츠구미의 옆자리에 앉는다. 대화중에 메이코가 츠구미에게 카즈아키가 자신의 남자친구였다고 폭로한다. 그 순간 츠구미는 자리를 뜨고 나가버린다. 그리고 카즈아키가 츠구미를 따라 나간다. 비어버린 두자리. 이것은 메이코의 상상이다. 다시 이야기는 진행된다. 카즈아키가 츠구미의 옆에 앉는다. 그러자 이번에 메이코가 먼저 나가버린다. 메이코는 비어버린 상상속의 두자리를 견딜수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그래서 먼저 나간다. 메이코가 나가고 영화는 메이코의 빈자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행복한 츠구미와 카즈아기를 보여준다.,다음 메이코가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는데 공사장의 소음이 들린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눈으로 치환되던 쓰레기소각장의 소음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눈으로 뒤덮힌 자신의 고향. 거기서 서로에게 치유받았던 남녀 배우가 떠올랐다. 길에서 그 소음을 들은 메이코는 갑자기 뒤를 돌아본 후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서 첫번째 에피소드는 끝난다. 난 메이코가 공사장의 그 소음을 찍었다고 생각했다. 소리를 찍는 영화. 두번째 에피소드는 텍스트와 낭독에 관한 이야기. 도발적인 소설의 내용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낭독하는 것과 인식에 관한 영화. 그리고 세번째는 나츠코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길에서 마주하는데 말을 할수록 동창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이야기다. 이 세번째 이야기는 우리 내부의, 타자의 본질에 관한 탐구로 여러해석이 가능하지만 이론보다는 감동적으로 봐서 여기서 멈추겠다. 세번째 에피소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아야와 나츠코가 헤어지기 전에 역활을 바꿔 다시만나는 것처럼 재현하는 씬이다. 아야가 육교위에 있고 나츠코가 에스컬레이터 아래로 다시 내려간다. 나츠코가 내려간동안 아야는 육교위에서 기다리기로 하는데 카메라는 육교위에서 나츠코가 나타날 입구를 찍고있다. 그 기다림의 몇 초. 우연을 대신해 그녀가 나타나리라 상상하는 몇 초. 난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씬이라 생각한다. 우연과 상상 올해의 베스트다. 이건 그냥 브라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