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음악 잡담

때로 어떤 영화음악은 그 자체로 영화보다 뛰어나서 그 자체로 영화를 각인 시키기도 한다. 어떤 감독들은 아마도 영화의 진행과는 상관없는 음악을 사용해서 그 충돌의 간극을 우리에게 기억 시키기도 한다. 어떤 감독들은 장면과는 전혀 반대의 음악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이미 진부해진 클리셰가 되버렸다.

올해 본 영화중에 굿타임이란 영화는 두말할 것 없이 최고였다. 두 형제의 악전고투 스릴러. 영화는 질주하고 달리다보니 옆엔 동생대신 다른사람이었고  이야기는 뒤틀리고 공간은 환각에 빠졌으며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쫓고 쫓기는 이야기. 그러나 감독은 스릴러를 찍으면서 사건의 운동성 보다는 인물들의 내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음악을 사용했는데 이 음악을 듣는 순간 리듬과 사운드의 구현에서 바로 떠오르는 영화가 한편 있었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영화의 열혈 청소년기. VHS비디오테잎을 구해서 밤을 새우며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보다가 충격에 빠져서 허우적 거린 시절이 있다.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조르지오 모로더의 음악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것도 있지만 라스트씬에서 주인공이 탈옥을 하는데 긴장 넘쳐야 할 음악대신 깊은 체념과도 같이 흐르던 a minor의 음악. 감옥은 탈출했지만 이상하게 황야에 버려진 채 먼지가 될것처럼 끝나는 라스트씬의 인상은 전부 이 음악 때문이었다. 지금도 영화의 내용은 생각이 안나지만 그 라스트 씬 만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최근엔 설 마지막날 채널 A에서 해준 머니볼을 보고 약간 충격에 빠졌었다. 7년전에 보았던 영화보다 훨씬 좋았고 특히 머니볼의 음악은 스포츠 장르 영화의 규칙과는 거리가 멀었다. 음악은 영화내내 브래드피트의 트라우마를 대변하고 있었는데 오클랜드가 20승의 기적을 채우는 순간 영화는  스스로 음악을 잘라버리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머니볼은 두개의 영화로 진행된다. 하나는 오클랜드가 말도 안되는 트레이드를 거치며 기적을 만들어내는 영화.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기적의 중심에 야구인생을 실패해서 그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는 브래드피트의 심연을 영화가 바라본다. 결국 브래드피트는 기적을 만들어내지만 영화는 마지막 순간에 필드에 누워 어딘가 힘들어하는 브래드피트를 모니터로 가둬버린다. 그는 단장으로는 기적을 이뤘지만 그 자신은 영원히 트라우마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레드삭스의 거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다 느닷없이 딸이 준적도 없는 CD가 차에서 나오고 “아빠가 샌프란시스코에 남아주면 최고의 아빠가 될꺼에요.”라는 말을 들으며 좋은아빠가 되기위해 오클랜드에 남는것처럼 서둘러 봉인하며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끝나버리는 영화의 결론은 정말이지 당황스러워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마지막 2분. 딸의 CD를 듣는 장면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베스트라 불릴만한 영화인데 말이다.

머니볼을 보면서 내가 영화를 보는법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과거에는 동양권의 영화들이 인물을 바라보기 위해 거리를 두고 응시하고 서구의 영화들은 인물을 바라보기 위해 더 다가서는 그 거리를 발견하는게 중요했다면, 지금은 그 거리의 간극를 통해 감독이 무엇을 말하는지 헤아려보려고 노력한다. 왜 머니볼을 찍은 다음 폭스캐처에서는 카메라의 거리가 인물들과 조금 멀어졌나 생각해본다. 결국 머니볼의 베넷밀러 감독의 관심은 게임의 승리보다는 영원히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브래드피트를 바라보는 영화를 만들었다. 게임보다는 그 팀의 인물들을 바라보는게 중요했다. 베넷밀러가 머니볼의 인물들을 대하는 방식, 폭스캐처의 인물들을 대하는 방식. 그 인물에 대한 감독의 태도. 당시에 머니볼은 Y와 승권이와 은정이와 같이 봤었는데 당시에 영화가 좋았다는 친구들의 말을 옆에서 으스러 밟아주던 기억이 부끄럽다. 얼마전 Y에게는 당시에 잘못봤다고 사과했는데 승권에게는  이 지면을 빌려서 사과. 게다가 영화의 예술이란 어쩌구 하며 개똥철학을 늘어놨다고 당시 블로그에 적혀있는데 정말이지 낯이 뜨끈뜨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