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트래비스

파리텍사스의 주인공 해리 딘 스탠든이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연기했던 ‘트래비스’란 이름은 아마도 내가 영화속 주인공의 이름을 기억하는 두명의 남자중 하나일 것이다. 파리 텍사스는 스필버그와 성룡영화를 열심히 보러다니던 내 삶을 완전히 흔들어버렸다. 살면서 그런 경험이 다시 있었을까 싶다.

이 영화에서 영화란 이야기도 아니었고 감동도 아니었고 교훈도 아니었다. 트래비스와 아들의 사막을 걷는듯한 감정을 2시간동안 따라가게 한다음 그걸 모두 소멸시켰다. 그리고 불켜진 그 자리에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에게 영화가 이런거라고 그 전에는 누구도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지금도 좋은 영화는 정말 많다. 그러나 당시 야자를 땡땡이 치고 청소년관람불가였던 영화를 표점검하는 아저씨와 불사투혼으로 맞서며 마주했던 트래비스는 내 인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는 변덕스런 내 인생의 영화리스트를 견뎌냈다. 지구를 수십번씩 구하는 히로인들이 와도 온갖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후보들이 나에게  다가왔어도 내가 기억하는 이름은 이상하게 트래비스였다.

그랬던 그가 이제 삶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불켜진 그 자리에서 이젠 내가 내 인생을 견딜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