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테렌스 멜릭이여

고딩시절 mbc 에서 해주던 주말의 명화에서 천국의 나날들을 해준적이 있다. 마지막 리처드 기어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물속에서 촬영한 부분이 있는데 그 장면이 당시에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감독의 이름을 외운건 후에 그의 걸작이라고 일컫는 황무지를 보고 나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황무지는 봤는데 길거리에 덩그러니 등장한 소녀의 이미지 외에는 생각나는게 별로 없다. 황무지를 개봉한지 십몇년 정도 지나서 봐서인지 그저 예측가능한 였화였었다. 천국의 나날들을 지금껏 기억케 하는 연결고리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사운드 트랙이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에서 한동안 시그널이었던가 하여간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마지막에 귀뚜라미가 우는 음악이었는데 멜로디가 무척 좋기도 했었지만 멜로디의 프레이즈와 코드로 진행되는 반주의 프레이즈가 맞지 않는 아주 이상한 음악이었다. 아름답지만 결코 들어맞지 않는 음악속에 자기의 연인을 동생이라고 속인 아브라함의 비극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리처드 기어는 자신의 연인을 동생이라 속였다. 그 아름다운 풍경속에 서서히 파멸해가는 미국이라는 천국이 있었다.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고 와서 천국의 나날들만 이야기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트리 오브 라이프가 별로였기 때문이다. 나는 테렌스멜릭을 씬 레드라인까지 지지했지만 다음 작품인 뉴 월드를 지루해서 도저히 끝까지 볼수가 없었다. 물론 테렌스멜릭이 인공조명을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햋빛의 광선을 담기위해 오늘 실패한 장면을 일년후에 그대로 다시 찍는 사람인걸 안다. 덧붙여 나는 그의 카메라는 늘 인물들의 사이를 휘감는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카메라는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대상에 접촉한다. 인물들이 어깨에 손을 올려 접촉하듯 카메라는 인물들과 접촉한다. 조명을 안쓰고 저 마법같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세상의 처음을, 세상의 끝을,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바람, 숨결, 숭고함, 어둠, 탄생과 죽음, 소망, 구원, 그리고 하나님을 담기위해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나는 상상할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눈을 감고 페이드 아웃시키면서 이것이 우주야 – 라고 말하면 그것이 우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그 어떤 순간을 담아내는 방법이 이미지 뿐이라면, 바람을 담기 위해 커텐이 날려야 한다면, 사랑을 담기위해 포옹을 찍는다면, 숭고함을 담기위해 교회의 스텐인드 글라스를 찍는다면,  난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여지는 것이 모든것이라면 영화는 얼마나 다른 예술에 비해 저 멀리 있는 것일까? 테렌스멜릭의 나이는 칠십을 넘었다. 그 평생동안  5편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트리 오브 라이프가 테렌스멜릭이 영화로 쓰는 레퀴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라크리모사를 비롯해서 끝없이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숀펜은 어떤 구원과 마주한다. 그걸 절반은 자연을 담을때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지 않음으로 다큐멘터리로 불려도 좋을것이고 절반은 테크놀러지의 정점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브레송의 손 보다 타르코프스키의 촛불보다 새로운 구원이 있었을까? 트리 오브 라이프에선 이미 다른 감독들이 만들어낸 구원을 반복하는 익숙한 구원이 있었다. 예고편을 보고 생각했던 영화의 느낌이 영화가 끝날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아멘이 불려지자 지난 여름 강원도 국제 음악제에서 들었던 모짜르트 레퀴엠이 훨씬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날 나는 모테트 합창단의 레퀴엠을 들으며 음악이 보인다고 생각되었다. 함창단의 주제부를 기악군에서 반복할때 이상하게 구원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 테렌스 멜릭이여, 트리 오브 라이프여, 난 기대치만큼  실망스러웠다. 그의 첫 편집본인 8시간 짜리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고 싶다. 혹시 거기엔 그의 구원에 다다를수 있는, 나의 믿음을 실망시키지 않는 그런 것을 발견할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