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언젠가 봐야지 했던 ‘크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로 믿으며 착각하며 본 영화다. 게다가 끝날때까지 남자 주인공을 랄프 파인즈로 알고 있었으며 여주인공은 브릿지존스 다이어리의 그 여배우인가? 생각하며 보았다. 음. 배우들이 점점 닮아가는건지 어떤이유인지 하여간 내가 점점 더 멍해지는 것을 알게되는 것도 어떤면으로는 기분나쁘지 않다.

팻은 막 정신병원에서 퇴원했다. 팻은 집에서 아내 니키의 외도를 목격하고 현장에서 불륜을 저지른 남자를 폭행해서 정신병원에 8개월을 있었다. 여기서 팻의 폭행은 우발적 폭행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었던 정신병적 증상의 발현이다. 팻은 퇴원을 해서도 끝없이 니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고 다시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밀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조울증과 인격장애를 앓고 있어서 아내와 학교에 접근근지 명령이 내려져 있다.

티파니는 팻의 친구 로니의 처제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이후 회사사람들 11명과 성관계를 하고 회사에서 짤렸다. 그녀에게도 팻처럼 정신병적 증상들이 있어서 팻과 같은 약을 복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팻이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티파니에게는 호텔에서 열리는 댄스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그런 그녀가 팻에게 호감을 갖고 접근한다. 팻은 티파니에게 별고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같이 댄스연습을 하며 점차 교감을 해나가는 도중 상의를 벗은 티파니의 뒷모습을 보고 팻은 묘한 감정과 흥분을 느낀다.

팻에게는 자꾸만 나타나는 친구 대니가 있다. 대니는 정신병원에 입원중인데  탈출을 해서 자꾸만 팻앞에 나타난다. 그는 정신병원을 탈출한 다음 집으로 가지 않고 자꾸만 팻에게 온다. 대니의 등장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우리는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왜 팻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그리고 병원은 어떻게 탈출하는 것일까?

대니는 팻이 퇴원하는 병원앞에서, 또 한번은 팻의 집에 불쑥 나타난 다음 자신이 퇴원을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거짓말이 탄로나고 곧장 병원으로 잡혀간다. 세번째는 댄스대회를 위해 연습을 하고 있던 티파니의 집에 나타나는데 거시서도 대니는 팻과 티파니에게 자신이 퇴원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대니의 거짓말을 두번이나 목격했던 우리는 그 말을 믿지 못하는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더 놀라운건 그는 실제로 퇴원을 한 상태였다. 계속 정신병원을 탈출하다 잡혀가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퇴원을 하게 된 것일까? 여기서 대니의 역활은 무엇일까?

나는 처음엔 대니를 보면서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사이,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얼룩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대니는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그 존재의 의미가 없어진다. 다른 한편으론  팻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나 만날 수 없는 니키의 발현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것 역시 마지막 무도회 장면에서 대니와 니키가 한 장소에 있는것을 보고 그건 성립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영화는 어떤 해답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서 이 ‘불가능한 대니’가 계속 머리속에 남아있다.

팻과 티파니는 댄스대회를 나가서 원하는 성적을 얻는다. 거기에 니키가 찾아온다. 니키의 등장. 팻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아내. 그러나 현실엔 등장하지 않았던 팻의 이상으로서의 대상. 말과 글로만 존재하는 인물. 그  초월적 대상이 드디어 팻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팻은 댄스대회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자마자 바로 니키에게 다가간 후 그녀에게 귓속말을 한다. 그 장면을 본 티파니는 무도회장을 도망치듯 빠져나간다. 팻의 아버지는 팻에게 말한다. 티파니는 인생이 너에게 준 기회라고, 놓치면 안된다고. 니키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말을 듣고 팻은 티파니를 따라가 티파니를 붙잡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여기서 인상적인것은 팻이 아내에게 하는 귓속말이다. 그렇게 만나고 싶은 대상을 만난 순간 하는 행위가 귓속말이란건 너무나 낯설고 그런 이유로 그 장면은 어떤방식으로든 읽힐수 밖에 없는 패턴이다. 영화는 그 귓속말의 그 내용이 뭐 커다란 핵심이라도 되는냥 보여주지만 우리는 그 장치에 속으면 안된다. 귓속말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귓속말의 진정한 의미는 비밀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귓속말하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대상을 밀어내기 위함이다. 귓속말은 티파니에게 그 장면을 보게함으로 자신의 사랑이 의미없다는 것 깨닫게 하는 장치로서의 역활이지 사실 내용자체는 텅 빈 속삭임이다.

결국에 팻은 니키대신 티파니를 선택하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 티파니는 영화의 여주공이므로 이건 당연한 결론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결론이 많이 불편하다. 티파니는 남편을 잃은뒤 회사사람들 11명과 성관계를 가진 여자다. 아내의 불륜을 보고 견딜수 없었던 팻이 11명의 회사동료와 성관계를 가진 여자와 맺어지는 것을 우리는 해피엔딩이라 할수 있을까?

이것은 단순한 윤리의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티파니의 상의 누드 뒷모습은 아내 니키의 불륜시 누드 뒷모습과 정확하게 겹친다. 팻은 집에 들어온 후 아내의 샤워하는 뒷모습을 마주한 순간을 의사에게 말하면서 “나도 동했어요. 나도 샤워실에 들어가려 했죠. 샤워하면서 해본적은 없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니키의 누드 앞면엔 역사선생이 있었고 니키는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팻에게 걸린것이다. 여기서 나는 팻이 감정을 드러냈던 티파니의 상의 누드 뒷모습을 가져올수밖에 없다. 티파니의 누드 뒷면은 팻의 흥분된 감정과 동시에 마치 다른 역사선생이 있을수도 있는 불안이 감춰져있다. 그래서 이 해피엔딩의 뒷모습은 아름답지만 앞모습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앟는 불행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책임이란 단어는 우리를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는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팻과 티파니가 이어지는 것이 해피엔딩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정신질환자는 정신질환자끼리 맺어져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숨어있다. 광인은 광인과 가정을 이뤄서 그들의 세계에 격리되어야 정상성이 안도한다는 푸코식 결론. 사회의 도덕적 관념때문에 실행할수 없는 폭력과 광기의 비이성을 정상성의 대리인으로 배치해놓고 바라보며 만족해하고있다. 이런류 – 정신질환자나 자폐인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의 문제점은 늘 그러듯이 그들이 영화의 주체가 아니라 늘 정상성의 대리만족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실버라이닝이 말하는 해피엔딩이란 팻과 티파니를 위한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정상성의 세계에서 밀어내기 위해 그들앞에서 우리에게 속삭이는 귓속말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