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눈이 점점 멀어져가는 바르다와 사진을 찍어 벽에 붙이는 작업을 하는 jr이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사진작업을 설치하는 과정을 찍은 영화다. jr은 사진을 찍고 바르다는 그걸 찍는 jr을 찍는다. 영화는 내내 고된삶의 현장. 그걸 버티는 사람들의 장소를 찾아가 그들을 찍는다. 그 다음 그들이 살고 일하는 장소에 그들의 사진을 붙인다. 그 과정을  유쾌하게 찍어서 마치 행복해 보이지만 그것은 순간이다. 다음날 바닷물에 씻겨 사라지는 노르망디 해변의 사진처럼 동네는 철거되고 사진들은 사라질것이다. 그 사라짐에서 바르다는 죽음을 바라본다. 영화는 내내 자본의 폭력, 죽음과 소외, 사라짐의 그림자와 싸운다. 넓은 농장을 트랙터로 혼자 관리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바르다는 얼마나 힘들까 대신 얼마나 외로울까 -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르다는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필름에 담는다. 거기에 더이상 부셔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너져가는 동네를 담는다.

한편 jr은 바르다를 찍는다. 이제는 더 걸을 수 없고 볼수도 없는 바르다의 눈과 발을 찍어 연료를 나르는 열차에 붙여준다. 그녀가 더 많은 세상을 여행하고 불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이다. 그 다음 그 둘은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고다르의 외부자들을 흉내낸다. 바르다는 영화처럼 뛸수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Jr이 뛰기 시작한다. 그 고귀한 미술관의 초상화들은 가난한 도시의 벽에 붙여진 Jr의 사진을과 대비를 이룬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바르다의 오랜 친구인 고다르의 집을 찾아간다. 거기서 고다르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가장 쉽게 해석하는법은 어쩌면 문을 열 필요가 없는집. 왜냐하면 그녀의 옆에 이미 Jr이라는 말하자면 고다르가 있기 때문일것이다. 처음부터 바르다는 jr을 보자마자 고다르를 떠올린다. 생각해보면 영화는 내내 고다르와 누벨바그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질 못한다. 그래서 새로운 새대의 고다르를 만나서 이전의 고다르와 결별하는 영화. 그런데 그 시대가 곧 자신의 삶이었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면 이 할머니 곧 돌아가실 것 같아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나는 바르다를 기억하는 방법 두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그녀의 바램처럼 영화를 소장해서 그 안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해줄것.

다른 하나는 그녀가 열지 못한 스위스의 고다르의 집에 찾아가 문을 열어주는것. 아. 정말 스위스 내가 가본 여행지중 제일 싫어하는 곳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