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마션을 보기전 극장에서 예고편을 보는데 한국영화는 온통 연쇄살인과 죽음뿐이다. 잡아도 잡아도 연쇄살인범들은 새롭게 등장하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간다. 자살이 일상인 나라에서 살인이라는 테마가 영화의 일등소재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공포영화를 볼때 사람들은 스크린속 살인의 끔찍함을 통해 현실이라는 위치에 안도하지만 한국영화의 살인은 현실로 치환된다. 극장문을 나서도 우리는 살인범으로 부터 벗어날수 없다. 왜냐하면 자살이라는 죽음은 사회학의 문제기 때문인다. 고로 이 사회의 시스템이 지속되는한 연쇄살인범은 영원히 잡히지 않고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끔찍한건 그게 아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사실은 연쇄살인범과 한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아가는게 이 비극의 핵심이다.

마션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영화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전지구적 귀환작전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오랜만에 느껴본 억지감동이었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마지막에 나사직원들과 전세계가 승리의 환호를 외치며 서류를 뿌려댄다. 요즘은 상업영화의 핵심인 마블도 이렇게 통속적이지 않다. 대략 20년전에 본 아마겟돈을 다시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런 재난구조 영화를 보면서, 세월호의  해결되지 않은 부채를 떠올리는것은 당연한것인지 모르겠다. 몰살극을 현실에서 겪는 국민에게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온 국가가 심혈을 기울이는 영화는 현실의 속임수거나 불가능한 욕망일 뿐이다. 게다가 사진의 장면에서 맷 데이먼이 ‘난 매일 지평선을 바라본다’라고 했을때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진도군의 수평선을 떠올렸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의 현실과 마주했을때 너무나 나약하게 소멸되었다.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발견할것이 없었다.  대신 마지막에 앙상하게 말라버려 흡사 에일리언같은 맷데이먼의 육체를 보면서 지금쯤 리들리 스콧이 프로메테우스2를 제작하고 있겠군, 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진지한 육체만이 웃자고 만든 영화의 이상한 얼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