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시 2

2003년에 나는 경계도시1편을 kbs에서 돈을 내고 다시보기로 봤었다. 영화속에서는 송두율 교수의 귀국이 좌절되는 순간들이 펼쳐졌다. 그런데 영화가 상영된후 2003년 영화 ‘경계도시’는 ‘경계인’을 이땅으로 불러들였다. 송두율 교수는 그의 숙원대로 조국땅을 밟은 것이다. 영화의 욕망이 현실에서 실현되는것처럼 보였다. 그런대 현실의 조국은 송두율을 구속하고 수감하고 내쫒았다. 그리고 2010년 초계함 침몰로 언론들이 한바탕 북한드립을 치는 날 나는 경계도시2를 봤다. 송두듈 교수의 귀국후의 이야기. 언젠가 한겨레 신문에 송두율 교수가 조국에 온걸 후회한다는 기사를 읽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 과거를 필름으로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거기에 그 장면이 있었다. 2010년에 그 말을 ‘보면서’ 그말이 지금도 유효하다는걸 깨달았다. 여전히 그에게 후회로 남아있을 조국방문. 영화는 그 먹먹한 울림을 텅빈 극장에 내뱉고 있었다. 아. 잊을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그로테스크한 박 홍 총장의 글로즈업. 또는 언론에서 KBS에서 상영된 경계도시를 문제삼아서 느닺없이 프레임안에 홍형숙 감독이 등장하는 장면. 말하자면 영화가 현실의 야만을 고발하자 역으로 현실이 개인을 공격하는 장면들. 그리고 이어지는 몇몇 감동적인 씬들.  그가 아버지의 묘를 방문하는 장면, 그리고 그의 석방. 남은 자들의 힘겨운 싸움. 그러나 이 영화의 최고의 씬은 송두율 교수의 기자회견을 위해서 지인들이 숙소에 모여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갑자기 조명은 어둡고 카메라는 꼼짝을 안한다. 여러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먼 발치에서 꼼짝을 안한다. 그래서 이 장면은 너무도 이상하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데 스크린에 손만 나왔다 사라졌다 한다. 송두율 교수의 귀국을 추진했던 사람은  경계인으로서의 송두율을 지우고 전향하라고 소리지르며 법석을 떠는데 카메라는 그의 등만 비춰준다. 도대체 뚜렷한 인물들이 보이지 않고 영화는 오직 송두율만 보여준다. 그래서 마치 송두율의 시간은 정지해있고 다른이들의 시간만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송두율만 사람이고 다른이들은 흡사 얼굴없는 유령처럼 보인다. 더 소름끼치는건 바로 이어지는 점프컷. 송두율은 갑자기 자리에서 사라졌고 사람들만이 계속 이야기 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에게 ‘경계인’ 송두율은 원래부터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씬에서 이 영화의 진심을 발견했다. 동료들이 갑자기 욥의 친구들로 변해버린 이 순간, 영화는 이 스펙터클을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며 상황을 찍지 않았다. 가장 믿었던 사람들이 경계인으로써의 송두율을 부정할때 그 자리에서 영화는 흔들리지 않았다. 카메라는 송두율만을 보고 있었다. 그자리엔 오직 두가지 만이 송두율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의 부인이 하는 말과 영화가 보여주는 시선. 그리고 힘겹게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경계인으로써의 자신을 지운다. 이상의 날개를 꺾고 자신을 부정하고 또 부정한다. 그리고 그는 조국을 떠난다. 경계인이 사라진 도시. 그렇기 때문에 경계도시 또한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석방 후 찾아간 제주도는 한국의 이미지가 아니다. 화강암에 붙은 이끼들이 불러들이는 낯설음. 한국의 현실대신 그가 택한 곳은 한국의 환상이다. 다시말해 경계도시1편이 아직도 이념의 경계에 존재하는 한 도시의 이야기라면 경계도시2는 2004년 이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경계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걸 우리는 2010년에 바라본다. 그러면 경계도시가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으로 채워져있을까? 그것은 신 자유주의. 경계도시2를 절대 방영할리 없는 KBS가 있는 세상. 나쁘거나 혹은 더 나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