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春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 – 늦은 봄-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만춘에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씨퀀스가 너무 많아서 위의 씨퀀스는 영화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 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어서 남겨놓는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raff의 cavatina를 들을 수 있는 시퀀스이기도 한다. 쇼트 1에서 핫토리는 노리코에게 바이올린 연주회를 가자고 제안한다. 쇼트 2에서 노리코는 자신을 위해 티켓을 산거냐고 묻는다. 왜냐하면 핫토리는 곧 결혼할 여자가 있고 이 자리는 제자인 핫토리를 결혼선물을 위해 아버지가 딸 노리코를 보낸 자리이기 때문이다. 쇼트 3에서 핫토리가 그런거라고 하자 쇼트4에서 노리코는 혼날까봐 그럴 수 없다고 웃으며 말한다. 문제는 갑자기 쇼트 5에서 시작된다. 아무 상관도 없는 연주회장 안내원의 쇼트가 등장한다. 그리고 동시에 raff의 카바티나가 연주된다. 우리는 왜 갑자기 저 안내원이 이 영화에 나오는지 알수 없다. 아마도 핫토리가 노리코가 와주길 기대하면서 안내원에게 표를 맡긴 것 일수도 있고 아닌 것 일수도 있다. 그래서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무심하게 벽에 기대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음악이 흐르는 순간 우리는 저 안내원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핫토리의 심정처럼 보인다. 혹은 핫토리를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노리코의 심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저 둘 사이의 관계. 교수의 딸과 교수의 제자라는 관계, 사랑했을지도 혹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핫토리가 결혼함으로 핫토리의 삶에 위치했었던 노리코의 자리와 그들의 관계는 사라지게 된다는 체념에 관한 감독의 심정으로 읽는다. 여기서 오즈는 이 둘이 사랑했는지 아니었는지, 어떤 사이였는지 중요한게 아니다. 대신 한 남자가 결혼함으로 변하는 기존의 관계와 새로운 미래의 관계들. 결혼전에 교수님의 딸이기 전에 여자로 만날수 있었던 가능성의 자리는 이제 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제 그 둘의 관계는 변할 것이다. 그 옆자리. 함께하고 (쇼트 3) 떠나가고 비워지고 쇼트 8 다시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는 세월의 관계들, 그 당연한 것에서 삶의 비극을 본다. 그래서 쇼트 9부터 노리코를 따라 움직이던 카메라는 나무 뒤에서 멈춰버린다 (쇼트 11). 거기 노리코가 핫토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거리. 그 거리에서 노리코의 흔적은 곧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다른 사연이 그 거리에 들어설 것이다. 그리고 이제 노리코와 그녀를 둘러싼 삶의 관계들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것은 비극이 아니다. 게다가 핫토리와 노리코의 관계는 영화에서 그저 작은 부분일 뿐이다. 또한 오즈의 배우들은 극단적인 비극에 빠지는 법이 없다. 대신 많이 웃을수록 슬프다. 예를 들면 그의 가장 유쾌한 코미디 ‘안녕하세요’를 보면서 나는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렸었다. 오즈는 항상 인물들이 대화를 할때 인물의 대화의 내용 대신 대화하는 모습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카메라는 180도의 규칙을 깨버리고 두 사람의 대화의 내용대신 그 얼굴과 몸짓, 행위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는다. 사라질 관계들의 순간을 담아내고자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을 반복해서 만들어낸다. 사람과 사람이라는 관계의 지도. 그 상실감의 질서. 그 가운데서 변하고, 그리고 변해야 하기 때문에 체념해야 하는 것들. 오즈의 영화들은 그것으로 가득하다. 노리코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간다. 이 영화의 기본 플롯은 혼자인 아버지를 위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딸을 시집보내고자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딸을 보내고 텅 비어있는 공간에 홀로 남아 외톨이가 된 아버지 대신해서 아버지가 깎는 사과가 슬픔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아버지의 깊은 심연의 한숨 대신 아버지와 노리코가 함께 살았던 그 집이 불을 밝히지 않는다. 인물들의 슬픔을 대신해서 드러내는 사물들의 체념의 쇼트. 그리고 나와 관계없는 낯선 인물의 어떤 행위의 쇼트들에서 우연히 드러나는 삶의 비극성. 거기서 내리는 결론은 언제나 인간은 혼자라는 쓸쓸함. 예전에 처음 오즈의 영화를 영화제에서 볼때 친구와 함께 ‘뭐야. 영화들이 그냥 죄다 결혼하는 평범한 드라마자나.’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 만일 영화가 동양에서 발명되었고 영화의 이론과 미학적 연구가 아시아에서 발달했다면 – 오즈의 만춘이야말로 영화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베스트1의 위치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